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이 책의 부제는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 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연장선에 있는 주제를 다룬다.
읽는 행위에 대한 변화와, 우리에게 야기된 결과 혹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읽는 삶”을 되찾자는 내용의 책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 버린 읽기 회로와 생각의 패턴, 삶의 태도에 대해 다소 놀랐다면,
이 책에선 친절한 작가(작가는 독자에게 쓴 편지로 책을 구성했다.)가 제시하는
독서가의 삶을 위한(작가가 “좋은 독자”라 일컫는) 방법을 배우고 시도해볼 수 있다.
먼저 우리 자신의 읽기에 대해 검토해볼 수 있는 질문이 있다.
- 독자 여러분은 혹시 글을 읽을 때 주의력이 예전보다 못한가요?
- 심지어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하는 능력조차 떨어졌나요?
- 스크린으로 읽을 때면 점점 핵심단어만 찾아 읽고 나머지는 건너뛴다는 사실이 느껴지나요?
- 스크린 읽기의 습관이나 방식이 종이책 읽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 뜻을 이해하지 못해 같은 단락을 반복해서 읽는 때가 있나요?
- 글을 쓸 때면 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표현하는 능력이 미묘하게 빠져나가거나 줄었다는 의심이 드나요?
- 정보를 간결하게 요약한 문장들에 길들여진 나머지 스스로 그 정보를 분석해 볼 시간이 없거나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요?
- 치밀하고 복잡한 분석은, 심지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도 점점 기피하나요?
특히 다음 질문이 중요합니다.
- 예전에 자신이 읽기 자아에서 끌어오곤 했던, 존재 전체를 감싸는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운가요?
- 사실상 더 이상은 길고 어려운 글이나 책을 읽어나갈 뇌의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나요?
- 만약 어느 날 여러분이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정말 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뒤에도 뭔가 어떻게 해볼 시간조차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질문에는 뜨끔하기도, 어떤 질문에는 안심하기도 했다.
나의 장래희망(멀지 않은 장래의 희망)은 “독서가”이다. 지금 내 삶에 독서가의 삶이 얼만큼 녹아있는지는 자신이 없다.
작가도 한 때 좋은 독자란 도서관에 있는 책을 전부 읽은 독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요근래 몇 년간 독서가이고 싶은 욕심에 다독을 목표로 삼은 적이 많았다.
좋은 독서가는 몇 권을 읽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가 중요하다는 글을 읽었을 때 뜨끔하고
나름대로의 깊이 읽기를 위해 필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깊이 읽기의 경험으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었다.
이 책은 “깊이 읽기”에 관해 더 심층적으로 설명해준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글을 소개하기도 하고 연구결과로 부터 얻은 결과를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읽기의 고유한 본질이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우리는 저자의 지혜가 떠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주 분명히 느낀다. (…)
이례적인, 더욱이 신적이기까지 한 법칙
(어쩌면 우리는 진리를 다른 누구로부터도 받을 수 없고,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는 법칙)에 의해
그들의 지혜가 끝나는 지점이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지혜가 시작되는 지점처럼 보이는 것이다.”
-마르셸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유추의 과정, 추론의 과정, 공감의 과정, 배경지식의 처리 과정 사이의 연결을 꾸준히 강화하면
읽기의 차원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차원에서 유리해집니다. 읽기를 통해 이런 과정들을 연결하는 법을 계속 배운다면
이는 삶에도 적용되어 자신의 동기와 의도를 구분할 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도 더욱 명민하고 지혜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 책을 읽는 데 뿐 아니라,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깊이 읽기”이다.
“깊이 읽기”라는 개념을 여러 책에서 접하고, 단순하게는 “대충읽지 않기”라고 이해했었다.
더 나아가서는 읽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 이해하고 생각을 발전 시켜보고 정리해보는 데 까지였다.
이 책에서는 읽기를 통한 공감하기에도 주목한다.
“그들이 보기에, 읽기라는 행동은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풀려나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일이 일어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열망과 의심, 감정을 가진 타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다는 거지요.”
“타인의 관점을 취해봄으로써 우리가 지닌 공감의 감각이 방금 읽은 것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세계에 관한 우리 내면의 지식까지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습 된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인간다워지도록 도와줍니다.”
-읽기라는 행위는 오직 인간이 개발시킨 능력이다. 이에 걸맞게 읽기를 통해 인간다움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공감을 위한 “관조”와 “침묵”을 이야기 한다.
“(마르셀 푸르스트가 말한)고독 속의 소통이 일어나려면 독자의 고요한 눈은 저자와의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정적을 유지해야 하지요.
그런 내적 대화가 이뤄지려면 독자에게 시간과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 순간 접속의 시대에 읽는 삶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정적”일 것이다.
“저는 강제로 책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첫째, 속도를 늦추고, 둘째, 책 속의 다른 세계에 빠져들며, 셋째, 저만의 세계 밖으로 들어올려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의 세계는 -아주 조금- 느려졌고, 저는 잃어버렸던 읽기의 길을 되찾았지요.”
“좋은 독자의 세 번째 삶은 읽기의 절정이자 앞서 말한 두 삶(정보를 모으고 지식을 얻는 삶, 즐거움을 위한 삶)의 종착지 입니다.
바로 관조적 독서의 삶이죠.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읽고 있는 장르가 무엇이든 완전히 보이지 않는 개인적인 영역,
즉 우리의 사적인 ‘해저’로 진입합니다.
거기서 우리는 모든 종류의 인간 존재를 관조하고 우주를 숙고합니다. 우주의 진정한 신비는 우리의 어떤 상상도 압도하지요.”
작년 연말 <코스모스>를 읽을 때도, 그리고 <지대넓얕:제로>에서도
우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 거기에 우주가 있고 우주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꽤 깊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독서는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들여다볼 여유도 없는 날들에도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어김없이 나를 계속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을 쓴 매리언 울프는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이다.
난독증에 대해 연구했고 난민어린이들과 취약계층 어린이의 문해력 향상을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곳곳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변할 환경에 놓여질 아이들과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이 많다.
그리고 그 고민의 해답을 읽기에서 찾는다.
나도 일곱살이 된 딸을 생각하며, 많은 부분을 되새기며 읽었다.
이제 막 혼자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어가기 시작한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누구도 다가올 세상을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는 자율적인 정신의 삶이 필요하고,
읽기가 그런 삶의 기초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우리의 읽는 뇌에서 일어나는 통찰과 성찰을 뒷받침하는 자기 확장적이고 포괄적인 과정이야말로
삶을 증진해주는, 디지털 시대의 다중적인 성취들에 수반되는 인지적, 감성적 변화에 대한 최선의 보완물이자 해독제가 될 것입니다.”
_정신의 기초를 다지는 일은 어쩌면 읽기를 통해 가장 쉽고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을것 같다.
“여러분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다른 곳에서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와, 자기 주변에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문장에 노출됩니다.
책 속의 단어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이야기와 책의 문법이며, 리듬과 운율이며, 말놀이 동시이며 노랫말이 다 여기에 해당됩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토록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는 없지요.
이 모든 최초의 경험들이 읽는 삶의 이상적인 출발점이 되어줍니다.
그것은 첫째는 인간적인 상호작용과 느낌의 연계,
둘째는 함께하는 시선과 부드러운 지시를 통한 공동주의의 발달,
셋째는 매일 같은 페이지의 같은 곳에서 마술처럼 다시 등장하는 새로운 단어와
개념의 일상적인 노출로 이어집니다.”
작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읽는다고 한다.
또한 “상상 너머, 저의 지식과 인생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읽는다고 한다.
그 공간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의 영혼을 내게 돌려주기 위해 아주 멀리 떠나갈 수 있다”며.
다시 책으로 돌아오라는 책의 제목(Reder, Come Home)처럼
언제든 나 자신의 세계로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읽는 삶의 자세를 다져두고 싶다.
독서가의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