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테드 창.
여지껏 나의 독서 분야에 SF는 없었다. 아마도 나의 공부가 문과에 치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나눠진 "과"에 나의 관심사도 흥미도 맞춰져 버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독서로 알지 못했던 분야에 흥미라는 걸 느껴보려 시도해보게 된 건.
코로나 때문이었다.
도대체 형체를 알 수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 란게 뭔데.
이렇게 일상에 치명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으며. 이 불안감이 넘치는 뉴스와 댓글들은 무얼 뜻 하는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고 싶었고.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건 독서였다.
모르겠다 덮어두었던 분야를 책으로 읽는다는 건 시작은 어렵지만 사실 꽤 간편하다.
이 책을 읽고 시험을 보는 것도, 독후감을 쓰는 숙제도 없기 때문에
그저 읽고, 어려우면 스르륵 읽어 넘어가고,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으면 적어가며 읽으면 된다.
수학에 대한 책을 읽었고, 물리학에 대한 책도 읽어봤다. 우주에 대한 책도. 철학에 대한 책도.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분야가 너무 넓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더라는. 나의 무지를 깨달아가며.
그렇게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고. 어렵지만 와닿은 내용들은 적어가며 읽었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느꼈는데 영화로 나왔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더 불확실해질 세상에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은 옳은가. 꽤 진지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고민과는 별개로 테드 창의 소설은 흡입력이 남달랐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 엄마와 딸이 있고, 과학자가 있고, 청년이 있고.
사람이 있다.
<숨> 역시 그렇다.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 인간으로서의 고민. 엄마로서의 고민. 참 많은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배경이나 설정을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도 있지만 문장만 따로 떼어 보면 지금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은 문장들도 많았다.
소설에 몰입하며 단숨(까진 아니지만 다소 빠르다 느끼며)에 읽었다.
창작노트엔 작가가 소설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더 명확히 설명해준다.
"사실상 우리는 질서를 소비하며 무질서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의 무질서도를 늘리는 방법으로 살아간다.
애당초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주가 지극히 질서 정연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놀라웠던 <숨>의 창작노트.
"진정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연인들은 처음으로 크게 싸우자마자 헤어진다.
어떤 부모들은 자기 아이인데도 최소한의 보살핌만으로 체면치레를 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다가도 귀찮아지면 완전히 무시한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이들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상대가 연인이든 아이든 동물이든,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욕구와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의지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하는 노력들에 대해 반추해보게 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의 창작노트.
름름하게 읽은 SF소설은 꽤 심오한 고민들과 함께 다르게 생각하는 경험이 되었다.
앞으로도 SF라는 분야에 름름하게 시도해 볼 작심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