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름름한 독서생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미디어는 생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생각의 과정도 형성한다. 또한 인터넷은 나의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든 오프라인 상에서든 나의 마음은 인터넷의 유통방식,
즉 숨가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작은 조각들의 흐름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 때 나는 언어의 바다를 헤엄치는 스쿠버다이버였다. 하지만 지금은 제트스키를 탄 사내처럼 겉만 핥고 있다.”

나의 마지막 사색은 언제였을까.
온라인에 ‘로그온’한 이상. 나에게 사색을 위한 침묵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컴퓨터의 등장이, 인터넷의 발명이 우리의 신경(사고회로)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인간의 사고회로는 사용하는 도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결국, 우리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간다고 한다.

인터넷의 무한 연결성이 우리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산만하게 만든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도 독서를 하는 동안 책에 완전한 집중을 할 때까지 점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sns를 열어보고, 여러 어플을 켜보고, 메신저를 들락거리며, 책에 몰입하기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독서중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사진을 찍어 줄을 긋고 공유하는 독서 어플을 써보았더니.
어느새 책을 읽기보다 찍어서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게시글을 #태그를 눌러 확인하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어플에 공유를 멈췄다.
신기한 건 공유를 멈추니 어플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나를 온라인상에 연결하지 않으면 나의 사회관계망에 대한 욕구도 조절되는 듯 하다.

대신 노트에 필사를 시작했는데, 이 마저도 가끔은 꽤 방해가 된다.
책을 읽고 다시 복기해보며 다시 정리하지 않는 이상, 온전한 독서가 마무리 되지 않는다.

작년에 읽었던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접했던 “깊이 읽기”에 대한 개념이 여기에도 등장한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적었듯
우리의 본능과 감정 그리고 이해를 통해 우리의 것이 되고,
그것을 통해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우리의 경험에 따라 해석되고(책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다층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첫 번째 독자가 되는 책(같은 종류의 책)”이라는...”

깊이 읽기의 마무리는 사색으로 완성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균형잡힌 사고의 발달은 광범위한 정보를 찾고 재빨리 분석하는 능력과 함께 폭 넓은 성찰의 능력도 요구한다.
효율적인 정보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그리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정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건 인터넷에 대한 반감이 아니다.
이미 반감만으로는 상황은 바뀌지 않을 만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저자 역시 인터넷의 편리함에 연결성을 누리며 살고 있다.
대신 인간다움을 포기하지말자고 한다.


“와이젠바움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 대해 측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의 사고와 신체와의 연결, 우리의 기억과 사고를 형성하는 경험, 감정과 공감을 위한 능력 등이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컴퓨터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즉 우리가 삶의 많은 부분을 모니터 상에서 깜빡이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상징을 통해 경험하면서
우리 앞에 당면한 큰 위험은 우리가 우리를 기계와 차별화 시키는 바로 그 특성들을 희생시키면서 우리의 인간성을 잃어가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이론이 변화할 때나 붕괴할 때, 국민적, 종교적, 경제적 사고의 좁은 뒷골목과
학파와 사상이 성장할 때와 허물어질 때,
인간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면서. 일단 앞으로 발을 내디딘 후 뒤로 미끌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반 발짝 물러설 뿐이다. 결코 한 발짝을 온전히 물러서는 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 벡. <하루의 취향>이라는 책을 읽다가 적어 둔 문장이다.)

우리의 현재를 생각해본다.
우리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는 많은 청사진들.
경제는 성장하고 있고, 주가는 오르고 있고, 기술은 점점 더 진보하고.

여기에 우리의 소외는 얼만큼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까.
우리가 느끼는 소외만큼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효율성과 편리함은 마음의 쓸쓸함을 혹은 고독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편리하게 챙겨줄 수 있을까.
자꾸만 0과 1의 세상으로 분리되어거는 오늘에 수 많은 점(.)들은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이 커다란 사색을 나는 완결지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깊이 읽기 위해 노력해본다.

“맥루한이 하고자 했던 말은 새로운 기술, 더 보편적으로 말해서 진보에 대해
솔직히 평가하자면 우리는 얻은 것 뿐 아니라 잃은 것에 대해 민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술의 영광이 우리의 핵심자아를 마비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내부적인 감시의 눈이 멀도록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